로봇을 위한 범용 학습 모델, $\pi_0$
최근 대규모 언어 모델(LLM)과 비전-언어 모델(VLM)의 발전은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입력 명령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AI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로 텍스트나 이미지 같은 비물리적 환경에서 작동하기에 실제 물리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로봇에게는 바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로봇도 사람처럼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세탁물을 꺼내 건조대에 올리고"나 "식탁을 치우면서 쓰레기와 식기를 분리"하는 등의 복잡한 업무를 손쉽게 수행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모델이 바로 $\pi_0$(파이-제로)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π0 모델이 제안하는 접근법과 성능,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통찰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범용 로봇 모델이 필요할까?
기존의 로봇 제어나 강화학습 접근법은 대부분 특정 과제나 환경에 맞춤형으로 설계됩니다. 예를 들어, "팔을 뻗어 컵을 집어올린다"와 같은 간단한 동작은 잘 수행하지만, 이 로봇에게 "빨래를 접고 정리하기"나 "여러 가지 부품을 조립해 상자를 만들기" 같이 여러 단계를 거치는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을 시키면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범용 로봇 모델, 즉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obot Foundation Model)"은 다양한 환경과 작업을 한 번에 학습하여, 새로운 과제나 변칙적인 상황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이 필요합니다.
- 대규모 학습 데이터: 다양한 로봇, 다양한 태스크, 수많은 시나리오를 포괄하는 방대한 데이터.
- 효율적인 모델 아키텍처: 비전-언어 사전 학습 모델(VLM)처럼 방대한 데이터로 사전 훈련한 모델을 활용해, 로봇 행동(action)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기법.
- 후처리(후속 학습) 전략: 우선 폭넓은 경험을 갖춘 일반 모델로 시작한 뒤, 특정 정교한 과제에 맞춰 세부 튜닝하는 방식.
$\pi_0$의 핵심 아이디어
$\pi_0$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 비전-언어-액션(VLA) 모델: 인터넷 규모로 사전 학습된 VLM(예: 대형 언어-이미지 모델)을 활용해 로봇이 시각 및 언어 정보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물리적 행동을 결정하도록 합니다. VLM을 통해 로봇은 단순히 픽업(pick-up) 동작에 그치지 않고, 물체의 의미나 맥락(예: "접은 옷을 다른 옷 위에 차곡차곡 쌓기")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Flow Matching을 통한 액션 생성: 로봇의 행동을 토큰처럼 단순히 하나씩 예측하는 대신, "액션 청크(action chunk)"라 불리는 시퀀스 단위로 예측하고, 이를 흐름(Flow) 형태로 매칭하는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기존의 디퓨전(diffusion) 기반 접근법과 유사하나, 로봇에게 필요한 높은 주파수 동작(예: 50Hz)과 미세 조작 능력을 정확히 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 다양한 로봇·다양한 태스크: 단일 모델에 7종류의 로봇(단일 로봇 팔, 이중 로봇 팔, 이동 로봇 등)과 68개 이상의 다단계 태스크를 모두 담아 냈습니다. 예를 들어, 빨래를 접거나, 책상 위 물건들을 분류해 치우거나, 상자를 조립하거나, 여러 개의 달걀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는 등 다양한 동작을 하나의 모델로 실행할 수 있습니다.
- 전처리(Pre-training)와 후처리(Post-training) 전략: $\pi_0$ 모델은 먼저 대규모·다양한 품질의 데이터로 폭넓은 능력을 습득합니다. 이 때 다양한 환경에서 실수나 변칙 상황을 다루는 법도 알게 되죠. 이후 특정 고난이도 태스크(예: 빨래를 정교하게 접어 차곡차곡 쌓기)에 대해 고품질 데이터로 후속 학습을 거칩니다. 이렇게 하면 모델은 "폭넓은 경험+정교한 기술"을 모두 갖게 되어, 실전 환경에서 더 높은 성공률과 안정성을 보여줍니다.
주요 성능 및 실험 결과
연구진은 총 10,000시간에 달하는 로봇 조작 데이터로 $\pi_0$를 학습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비슷한 크기의 사전 연구보다 훨씬 대규모이며, 종래 로봇 연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토록 다양한 데이터로 학습한 π0는 아래와 같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 다양한 태스크에서 즉각 성능 발휘: 별도 세부 튜닝 없이, $\pi_0$는 "접은 셔츠 정렬하기", "쓰레기와 식기를 각각 다른 통에 분류해 치우기", "토스터에서 빵 꺼내기", "식료품 봉투에 물건 담기" 등 다양한 작업을 깔끔하게 수행했습니다. 또한 특정 태스크에 대해 세부적인 후속 학습을 거치면 성공률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 언어 지시사항을 정확히 따르기: $\pi_0$는 "이 접시를 저 통에 넣어라" 혹은 "이 물건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같은 상세한 언어 명령을 정확히 수행합니다. 이전 방식보다 훨씬 정교한 언어이해-행동 연결 능력을 보여준 것이 특징입니다.
- 복잡한 장기 태스크 수행: 빨래를 여러 벌 접어 쌓거나, 상자를 접어 조립하는 등의 과정은 매우 긴 시퀀스의 행동과 섬세한 조작을 요구합니다. π0는 다양한 데이터와 Flow Matching 기반 액션 생성 덕분에 이 같은 장기·다단계 태스크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였습니다.
- 기존 방법 대비 우월한 성능: 연구진은 π0를 기존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이나 디퓨전 기반 액션 모델과 비교했으며, π0가 월등히 높은 성공률과 안정적인 수행을 보였습니다.
의미와 전망
$\pi_0$ 연구는 "로봇에게 인터넷 규모의 지식과 멀티태스크 경험을 학습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실제 환경에서 유용한 조작 기능을 끌어내는 것"이 가능함을 시사합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가집니다.
- 학습 데이터 중요성: 단순히 깨끗하고 정제된 데이터만으로는 환경 변화나 오류 복구 능력이 부족할 수 있으며, 다양한 상황을 담은 대규모 데이터셋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 후속 학습 전략: 사람에게는 간단해 보이지만 로봇에게는 어려운 일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선 넓은 범위의 경험(대규모 사전 학습)으로 기반을 다지고, 그 위에 정교한 행위를 추가 학습(후속 학습)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 향후 과제: $\pi_0$는 이미 다양한 로봇과 작업에 적용됐지만, 더 넓은 영역(예: 자율주행, 다족 보행 로봇)으로 확장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떤 데이터가 특정 태스크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지, 데이터 구성 전략을 어떻게 개선할지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결론
$\pi_0$ 모델은 로봇 분야에서 "범용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시대의 문을 여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델을 통해 다양한 태스크를 하나의 거대한 모델 안에 녹여내고, 언어와 시각 정보, 그리고 복잡한 동작 제어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접근을 더욱 개선해, 실제 가정이나 산업 환경에서 복잡한 업무를 자유자재로 수행하는 다재다능한 로봇 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